사회학적 상상력(1) - 사회학적 상상력이 대두된 배경
사람들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매일 밥을 먹고 직장에 출근하고 TV를 보고 친구나 연인을 만나고 쇼핑을 하고 가족들과 얘기를 나누고 잠을 잔다. 일상생활에 큰 불만이 없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러한 일상생활이 그럭저럭 지속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일상생활은 늘 안정적으로 지속되는 것이 아니다. 일생생활의 지속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조건들이 늘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변화들은 개인들이 적극적으로 추구한 결과일 수 있다. 하지만 어떤 변화들은 개인들이 의식하지 못했거나 의도하지 않았는데 그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변화들은 개개인의 일상에 크든 작든 불안정하거나 위기를 낳는다. 일자리를 잃는다거나, 빌려준 돈을 받을 수 없게 된다거나, 사업이 망한다거나, 이혼을 하게 된다거나, 부모를 잃는다거나, 질병에 걸린다거나 하는 개인적인 차원의 위기 상황은 일상에서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일상적 위기에 대해 우선 개인의 노력이나 능력의 한계 또는 개인적 습관이나 성격 탓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많은 경우 개인의 탓으로 돌리기 어려운 사회적 원인들이 작용한다. 사회학은 렇게 개인적인 것처럼 보이는 현상들의 이면에서 작동하는 사회적 원인들을 찾아내기 위한 학문이다.
일상생활과 사회학적 상상력
1997년 말 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 한국사회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던 일을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개인적인 능력부족 때문은 아니라는 점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외환위기는 자본의 유동성 위기를 낳았고, 이 과정에서 어음거래나 부채에 의존했던 많은 중소기업들의 부도와 구조조정에 따른 자본투자 감축으로 수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일자리의 안정석을 믿고 은행에서 빚을 내어 아파트를 분양 받았던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감봉과 해고, 그리고 갑작스러운 은행의 부채회수와 대출이자 상승 등으로 집을 팔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높은 전세 임대가나 낮은 대출이자에 기대어 아파트 분양을 받았던 집주인들은 하나 둘 씩 분양권을 포기하게 되었다. 실직이나 사업 부도에 따른 남편들의 급격한 경제능력 하락으로 가정불화와 이혼율이 증가했으며, 가족 동반자살이나, 부모의 이혼이나 자살로 인한 가정파괴 사례들도 급증했다. 이렇게 볼 때, 결국 IMF 사태에 따른 한국사회의 상황 변화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일상생활의 안정성이 왜 이렇게 갑작스러 위협받게 되었는지를 알기 어렵다. 게다가 오늘날 한국사회의 변화는 세계 각국을 하나로 엮어 놓은 자본주의 세계 체제의 흐름인 세계화(globalization)를 파악하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이혼률의 증가
이혼하는 비율이 부쩍 늘었다거나, 예전에는 남편의 폭력이나 부정행위, 시부모의 학대에도 이혼을 하지 않던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이혼을 선택한다거나, 성적인 불만이나 성격차이가 중요한 이혼사유가 되었다거나 하는 사실은 여성의 이혼을 죄악시하는 전통적인 사고가 급격히 변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혼에 대한 전통적인 사고를 변화시켰을까? 전통적은 유교 규범은 남성지배의 가족관계 및 부부관계를 정당화해왔다. 여성은 결혼하면 시댁에 들어가서 시부모를 잘 모시고 남편을 공경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었으며, 이는 여성 스스로에게도 내면화되어 있었다. 이러한 의식은 특히 남성이 가정의 경제력을 책임지고 있는 상황에서 더욱더 변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오늘날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른 전통적인 가족관계의 약화와 애정에 기반을 둔 부부중심적 가족관계의 확산, 교육수준 상승에 따른 여성의 권리의식 신장 및 경제적 능력 증대 등은 여성 인내를 강요하는 부당한 시부모와의 관계나 애정이 없는 불평등한 부부관계에서 벗어나 이혼을 선택하는 것을 훨씬 수월하게 했다. 특히 도시의 익명성은 이혼에 따르는 주변의 도덕적 비난에 대한 심적 부담을 훨씬 완화시켜주었다. 그러므로 오늘날 이혼율의 증가는 개인적인 성격이나 가치의 문제가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조건 및 상황의 변화와 이에 따른 이혼에 대한 의식구조나 가치관의 전반적인 변화로 설명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사회적 조건의 변화와 일상생활
IMF 구제금융 사기 이후 한국사회에서 해고, 부도, 이혼, 자살 등은 우리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접하는 사건이 되었다. 그런데 일상생활 속에 개개인들은 자신들의 행위 또는 자신들이 처한 상황이 어떠한 사회적 조건 속으로 이루어지고 사회 전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며, 이로 인해 어떠한 사회적 변화가 일어나서 자신의 장래에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 사회 속의 개인들의 행위는 자신들에게는 일상적인 행위이지만 사회적으로는 단순히 일상적인 것만은 아니다. 이들의 행위는 일상 속에서는 생각하기 어렵거나 무관심하게 지나치는 역사적, 사회구조적 상황 변화의 산물들이다. 이러한 변화는 특정한 제도나 규칙을 내포하는 사회적 관계(또는 사회구조) 속에서 일어나는데, 이러한 사회적 관계 및 조건의 변화는 때로는 직접적으로, 때로는 간접적으로, 때로는 느낄 수 있게, 때로는 느끼기 힘들게 늘 우리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이해하려면 개개인들의 삶의 모습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 역사적 과정에 대한 관계적(또는 구조적), 종합적 사고가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밀즈(C,Mills)가 말하는 사회학적 상상력(sociological imagination)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