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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근대사회의 형성과 사회학의 흐름(1) - 서양 근대사회의 태동과 시민, 사회사회학/서양 근대사회의 형성과 사회학의 흐름 2021. 1. 11. 11:24
사회학이란 서양 근대를 배경으로 생겨난 근대적인 학문 분야의 하나이다. 사회학은 정신적으로는 계몽사상과 과학주의 정신, 정치적으로는 시민혁명을 통한 중세 신분제도의 철폐와 인간해방, 경제적으로는 사유재산제도와 산업혁명을 통한 근대적은 시장경제(자본주의)의 발달, 문화적으로는 합리주의와 개인성의 발달을 배경으로 생겨났다. 사회학은 이러한 시대적인 변화를 통해 발생한 새로운 사회질서와 거기에 따른 사회문제들을 ‘과학’이라는 새로운 시각으로 이해하고 설명하려는 동기로 성립하였다.
도시의 발달과 시민계급의 형성
서양 봉건사회는 농업을 바탕으로 봉건적인 토지소유와 신분제도에 기반을 둔 사회였다. 왕족과 귀족, 그리고 성직자 등 토지를 소유한 귀족계급 농노와 자유농, 도시의 상공업자 등 평민층을 지배한 신분 사회였다.
그러나 이러한 봉건적인 사회질서는 16세기부터 상품생산, 교환, 시장과 화폐의 발달, 과학기술과 자연과학의 발달 때문에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시장경제가 발달함에 따라 상공업자층의 경제적인 부가 축적되어가고 정치적인 영향력도 함께 커졌다. 이 상공업자들은 주로 서양 중세의 교역 중심지였던 ‘도시’에 거주하였기 때문에 ‘시민(혹은 부르주아)’이라고 불렸다.
시민계급과 시민혁명
상업과 공업을 생계수단으로 삼아온 상공업자 시민들은 왕족과 귀족들이 특권적인 지위와 권력을 가지고 자신들을 자의적으로 지배하고 수탈하는데 불만은 가졌다. 이들은 귀족계급의 특권과 자의적인 지배에서 ‘자유’롭고 ‘평등’하게 되고자 하였고, 자신들의 ‘생명’과 ‘재산’을 안전하게 지키고자 하였다. 그래서 이들은 서로 동일한 처지와 불만 속에 있는 다른 도시의 상공업자들과 연락하고 ‘결사’하여 세력을 늘려나갔다. 이렇게 해서 이들은 봉건귀족 세력에게 저항하고 자유, 평등, 재산 등의 권리를 인정하고 보장해줄 것을 요구하거나 힘으로 강제하였다. 나아가서 왕족을 포함하는 귀족계급에게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에 입각한 통치를 요구하였다. 봉건시대의 국가는 왕이나 귀족계급의 소유물에 불과한 것이었으나, 이 신흥상공업자 시민계급은 국가의 주권이 ‘시민’을 포함하는 국민에게 있다고 하였다. 국가권력도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믿었다.
이와 같은 시민계급의 사고는 서양 근대의 계몽사상과 자연법사상, 사회계약론과 민주주의론 등 새로운 시대를 향한 혁명사상들로 뒷받침되었다. 이러한 사상들이 담고 있던 혁명적인 내용은 시민혁명 이후 서양근대의 법, 국가, 경제질서로 실현될 수 있었다. 1688년 영국의 명예혁명은 시민계급이 그와 같은 사상을 가지고 봉건 왕권에 도전하여 성공한 대표적인 예로서 왕권을 제약하고 시민의 권리를 명문화한 권리장전(1689)을 낳았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이와 같은 시민계급의 저항과 권리의 확대가 장기간 걸쳐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던 반면, 프랑스에서는 1789년 대혁명을 통해 급격하게 이루어졌다.
근대사회로의 이행과정의 원동력이 되었던 것은 상공업자 시민들이었다. 이들은 각 도시를 연결하는 결사체들을 만들어 힘을 합쳤고, 이를 기반으로 정치적인 영향력을 확대한 것은 물론이고, 중세 봉건왕국을 무너뜨리는 시민혁명으로 나아갔다. 이러한 시민들의 결사체는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2차적인 결사체, 즉 ‘사회’의 원형이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사회라고 하는 것은 중세 이전까지는 존재하지 않다가 중세 말기에 새롭게 생겨난 조직 형태였다.
사회계약론과 시민사회 사상
사회라는 것은 또 홉스나 로크, 루소 등 계몽사상가들의 ‘사회계약론’을 통해 이론적으로 새롭게 출현하였다. 이들은 인류 역사가 ‘자연상태’에서부터 ‘사회상태’ 또는 ‘시민사회’로 넘어왔고, 이 과정에서 사회라는 것이 결성되어 국가를 만들었다고 보았다. 그래서 이 과정은 공동체적인 자연상태에서 사회와 국가(혹은 ‘시민’사회와 국가)가 이분화된 사회상태로의 이행이었다. 여기서 공동체(Gemeinschaft)란 혈연적인 동질성을 지닌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덩어리를 의미하고, 사회(Gesellschaft)는 개별적인 이질성을 지니는 구성원들이 후천적, 2차적으로 만나 집단을 이룬 것을 의미한다.
공동체적 상태에서 사회는 형성되지 않았고 왕국의 산하에 포괄되고 예속되어 있었다. 그러나 시민들의 결사체가 정치적인 힘을 갖게 되면서 “국가의 주인은 왕이 아니라 시민들이다”라는 민주주의 사상이 힘을 갖게 되었고, 시민혁명을 통해 시민사회는 근대적인 법치국가와 대의정치 질서를 만들어냈다. 이로써 봉건적인 왕국 공동체는 시민사회와 국가라는 이분화된 구조로 바뀌었고, 시민들의 경제활동도 신분에 따른 특권적인 지배와 착취가 배제된, ‘자유’롭고 ‘평등’한 자본주의 시장경제 원리에 따라 이루어지게 되었다.
시장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운영되는 기구라고 한 아담 스미스의 시장경제 예찬(경제적 자유주의)이나 국가는 시민들의 경제생활에 대해 간섭할 일이 없고 단지 시민들의 사유재산과 생명을 보호하는 야경꾼의 역할만 하면 족하다고 하는 ‘야경국가론(정치적 자유주의)’ 또한 서양 근대 시민계급과 시민사회의 사상을 가장 잘 표현한 대표적인 예에 속한다.
서양 근대사회는 이러한 경제적, 정치적, 사상적인 변화를 배경으로 성립하였으며, 시민과 시민계급, 시민사회와 형성을 통해 새로운 질서를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사회’가 뚜렷한 실체로 출현하자, 뒤이어 사회를 탐구대상으로 삼는 사회학이라는 새로운 근대적 학문도 탄생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회학을 성립하게 만든 직접적인 배경은 계몽사상과 과학주의 정신의 발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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